나 자신 스스로가 너무 힘들어서 상담을 여러 번 받았고, 여러 선생님을 만나뵜다.
상담 선생님이 되신 분 들중에 많은 분들이 자기 자신의 문제를 연구하다가 , 그리
되신 경우가 많다고 한다.
이 작가님 자신도 산문집을 통해서 자신을 치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. 책을 읽으면서
이 부분 , 저 부분 꼭 블로그에 올려야지 했지만 시간이 좀 지났더니 그 사이 다 잊어먹었다.
책을 다시 넘기면서 보니, 블로그에 적고 싶은 부분이 있다.
[ 내가 가장 잘하는 건 '상처로부터의 줄행랑'이었다. 서른이 넘어서도 상처와 대면하는 법을 몰랐다. 무조건 도망치기만 하면 아픔이 마치 오래전 책갈피 속에 끼워두고 영영 펼쳐보지 않은 단풍잎처럼 그렇게 기억에서 사리질 줄 알았다. 하지만 상처는 밀림속의 복병있다. ... 콤플렉스가 진정한 내 모습이 드러나지 못하도록 나 자신을 가로막고 있었다. 방법은
하나뿐이었다. 상처와 진검승부하는 것. 내 상처를 대면하는 것. ... 아주 어리고 유치하지만, 어디로도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내면아이의 목소리가. '네가 나를 항상 무시하니까 그렇지. 날 무시할수록 넌 더 힘들어져. 네가 나를 아무리 무시해도 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.' ... 그 아이는 다급한 얼굴로 나를 채근했다. 어서 자신을 달래달라고. 어서 자신을 일으켜달라고 보채기 시작했다. 어처구니 없었지만 천만다행인 것은 어제 나에게 그 내면아이를 다독여줄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점이었다.]
[ 내가 저버린 나의 내면아이 중 제일 먼저 기억난 첫 번째 소녀는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나였다. 내가 한없이 부러워하면서도 내심 좋아했던 같은 반 친구가 알고 보니 나를 철저히 무시하고 외면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게 된 어느 날. 나는 '영원히 좋은 친구를 가질 수 없겠구나' 하는 강력한 확신이 생겼다. ... 그땐 알지 못했다. '친구에게 잘 보이는 것'과 '친구를 사귀려는 진심 어린 노력'이 다르다는 것을. 나는 친구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, 친구의 눈 밖에 나지 않게 애쓰느라, 친구와 진심으로 소통하는 길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. ... 이미 평등하지 않은 관계, 이미 내가 접고 들어가는 관계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.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과 진심 어린 우정을 구분하지 못했던 그 때는, 그 아이를 잃는 것이 온 세상의 우정을 잃어버리는 것 같았고, 앞으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가능성조차도 모조리 닫히는 기분이었던 것이다. ]
[나는 아직 내가 그 시절의 상처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. ... 나는 이제 그 아이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. 살다보면 '진정한 친구가 없다'는 생각이 들어 무척이나 외로워질 때가 많다고. 하지만 그건 내 외로움과 무력감 때문이지 친구의 탓은 아니라고. 친구에게 잘 보이려 하지 말고, 친구에게 그냥 네 소질한 마음을 온전히 보여주라고 ... 네가 먼저 다가가 좋은 친구가 되라고. 때론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가 철저히 일방적인 짝사랑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, 그럴 땐 '그 사람'을 보는 것이 아니라 '내 마음'을 봐야 한다고. 내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똑같이 사랑받기를 원하지 않아도 된다고. ]
[내면아이와의 만남에서 주도적으로 말을 걸어야 하는 쪽은 성인이 된 나 자신이다. 내면아이는 뜻하지 않는 순간 오래된 트라우마의 형태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뿐, 자신이 나서서 직접 행동할 수가 없다. 성인 자아가 먼저 말을 걸어주고.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깨닫게 된 것들을 이야기해주면 , 내면아이는 비로소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. 그리고 오래오래 숨겨두기만 했던 자신의 상처를 꺼내 보여주며 흐느끼기 시작한다. ... 내면아이가 제발 나를 도와달라고 절규하는 순간은 분명 위기이지만 '내 안의 진짜 내 모습'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. 이제 상처의 처절한 양면성을 조금 알 것 같다. 상처를 꺼내보며 대면하는 순간은 미칠 듯이 고통스럽지만, 상처를 꺼내보는 순간 내 안에서 '그 상처를 이겨낼 수 있는 커다란 힘'도 함께 나온다는 것을.]